Pudding - Thank (Instrument) from "If i could meet again" album

주의 - 이 감상은 완벽하게 주관적이다.












한 시간, 두 시간 정도 이 곡만 듣는 때가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아이스와인에 치즈 크래커를 꺼내 먹는 느낌이구나 했다. 지금의 내 귀에는 레드와인이다. 왜 맛이 달라졌냐고? 음악의 뉘앙스란 음악 자체에 의해서는 절반만 결정되고 나머지 절반은 받아들일 때 결정되는 법이니.

보다 정확하게는 레드와인의 화려하고 선명한 풍미에 바카디의 강렬함, 보드카의 끈적임, 일본소주의 깔끔함이 있다. 물론 한곡에 이 모든 느낌이 넘쳐난다면 그 곡을 듣고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거다. 각각의 맛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줄어들어 잘 믹스되있다. 사실 맛의 원천은 내 안에 쌓여있는 그 무엇, 한번 바닥부터 갈아엎어진 내면에서 올라온 무엇인가겠지. 음악은 그것을 쿡쿡 찔러서 깨울 뿐이렸다.

이 곡을 들을때 쏟아지는 느낌을 제공하는 와인이 있다면, 모조리 사들여 마셔서 세상에서 없애버리고는 입안가득한 느낌을 느끼며 나도 세상에서 사라진데도 좋겠다. 꼭 와인이 아니라도 상관없지만.그러나 그런 술을 만들 수 있을리가 없고, 그러니 내가 술독에 빠질 날도 오지 않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술의 취기는 너무 약하다. 취하고 싶어 몸이 아작나게 들이켜도 정신까지 스며들어오지도 못하는 놈이 술이다. 그 까짓것.

자주는 듣지 못한다. 내 정신이 이 감각을 언제나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시간이 허공을 바라보며 날려보낼 만큼 대수롭지 않은 시간도 아니다. 아직 나의 신앙은 내 세계를 온전히 지탱할 만큼 자라나지 못했고. 그저 술 담배는 취하기에는 너무 보잘것 없는 물건이니까. 곡에라도 취해본다. 음악에 취하는 푸닥거리다. 그러나, 음악과 예술에 취해 감정을 파먹으며 살아가는 것과 술과 담배로 몸을 파먹으며 살아가는 방법. 둘 중 어느 쪽이 더 해로울까.

If i could meet again.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아마 용서가 안되는 것은 자신이겠지.
이제사 원점으로 돌아왔는데 당신은 없음을 슬퍼한다.
나는 한발 내 딛을 수 있을런지.

If i could meet again.
아마 네가 내 청춘의 마지막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이렇다는 이야기일 뿐, 다른 사람에게는 가벼운 아이스와인에 치즈 크래커 한조각 같을 것이라고 다시한번 적어둔다.

Posted by 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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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飛烏 2007/04/30 23:53 # M/D Reply Permalink

    묘사가 황홀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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