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옹자전

- 희노를 드러내지 않는다 中

언제가는 어떤 한서를 읽다가, 희노(喜怒)를 드러내지 않는다 는 구절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아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적이 있다. 이거야말로 금언이구나 하는 생각에, 늘 잊지 않도록 하며 혼자 이 가르침을 지켰다. 누가 무슨 말로 칭찬을 해주건 그냥 건성으로 적당히 받아들일 뿐 마음속으로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또한 아무리 경멸을 당하더라도 결코 화를 내지 않았다.

- 오사카 서생의 특징 中

그러니 오가타 서생이 몇년이나 공부해서 어엿한 학자가 되어도 실제의 일자리와는 인연이 없었다. 즉 의식주와 인연이 없는 것이다. 인연이 없으니 일붕러 인연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고학(苦學)을 하느냐고 물어도 대답할 말이 없다. 명예를 추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난한 서생이라고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할 뿐인지라 이미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있었다. 오로지 밤낮으로 고새하며 어려운 원서를 읽고 좋아할 뿐 정말로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당시 서생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었다. 그 즐거움은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 것이다. 서양의 새로운 문명이 기록된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일본 전국에서 우리밖에 없다. 우리 동료들만 가능한 일이다 하면서, 가난하고 고생스럽게 조의조식(組衣組食), 언뜻 보기에는 볼품없이 초라한 서생이지만, 왕성한 지식과 고고한 사상만큼은 왕족귀인을 눈 아래로 내려다볼 정도였다. 그저 어려운 것은 즐거운 것이라면 고중유락(苦中有樂), 고즉락(苦卽樂)의 경지였던 듯 하다. 말하자면 이 약이 어떤 병에 잘 듣느지는 모르지만 우리 외에 이렇게 쓴 약을 먹는 자는 없으리라는 생각에서, 어떤 병인지 묻지도 않고 그저 쓰기만 하면 무작정 먹겠다는 혈기였던 것이다.

- 고이시카와에 다니다 中

요코하마에서 돌아온 나는 다리가 피곤한 것보다도 낙담이 컸다. 이래가지고는 안되겠다. 이제까지 몇 년이나 필사적으로 네덜란드어 서적 읽기를 공부했는데, 그것이 지금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가게의 간판을 보고도 읽을 수가 없다. 그로고 보니 정말로 쓸모없는 공부를 한 셈이로구나 하며 정말로 낙담하고 말았다. 그러나 결코 낙담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그곳에서 사용되는 말, 적혀 있는 문자는 영어나 프랑스어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지금 전세계에서 영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영어였을 것이다. 지금 일본은 조약을 맺고 개방을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틀림없이 영어가 필요해질 것이다. 양학자로서 영어를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앞으로는 영어를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다.

- 활달한 서생도 새색시처럼 中

일본을 떠날 때까지는 천하독보(天下獨步), 안하무인, 무서울 게 없다며 거드름을 피우던 활달한 서생들이 처음으로 미국에 와서 새색시처럼 기가 죽은 것은 내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 워싱턴의 자손들에 관해 묻다 中

언젠가는 메어아일랜드 군항에 근무하는 캡틴 맥두걸이란 사람이 일본 화폐를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 함장은 미리 그런 요구에 대비해 마련을 해두었는지 갖가지 금은화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게이초고반(한냥짜리 금화)을 비롯해 만엔 연중까지 발행된 화폐를 모아 캡틴에게 보냈다. 그런데 신기하다는 소리만 연발할 뿐, 보물을 받았다는 기색은 조금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부인이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며 꽃을 갖고 왔다. 나는 그를 안내하며 혼자 은근히 감동했다. 사람이란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정말로 마음 됨됨이가 고상하다. 금은을 받았다고 해서 마구 기뻐하는 것은 천박한 행동이다. 바로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하는 생각에 크게 감동했다.

Posted by 발당


Trackback URL : http://jbdmk1.upnl.org/tt/trackback/326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69 : 70 : 71 : 72 : 73 : 74 : 75 : 76 : 77 : ... 30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정착

- 발당

Tag Cloud

Notices

  1. Info

Calendar

«   2009/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Bookmarks

Site Stats

Total hits:
93195
Today:
83
Yesterday: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