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랑이 주제다. 내가 처음 열렬하게 사랑했던 대상은 게임이다. 일본 소년 스포츠만화의 주인공이 자신의 종목을 사랑하는 것 처럼. 아주 단순하고 열정적으로 게임을 사랑했다. 게임 플레이를 즐기기도 했고 종이위에 연필로 만들고 싶은 게임의 기획을 끄적거릴 때는 참을 수없이 행복했다. 중학교 도덕시험시간에는 떠오른 아이디어를 시험지 위에 열심히 적었는데 시험지를 거둬가는 바람에 원칙주의자인 선생님을 찾아가 담판(?)을 지은 적도 있다.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정제하다가 언젠가 인맥이 넓어져 내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를 만났을 때 인디밴드가 힘들게 한곡씩 레코딩하여 앨범을 내듯이 배고프더라도 완성도있는 게임을 만들 꿈을 꿨다. Quest팀이 나의 우상이요, 미야모토 시게루와 시드마이어는 나의 신이었다.
아주 최근 까지도 게임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한 때의 비전정도로 여겼다. 이성을 사랑하면서 상대를 향한 나의 감정이 게임에 대해 품었던 마음과 비슷하여 당황한 적이 있다. 탐구해야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정복할 대상, 피상적인 객체로 사람을 생각하는 내가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성에 대한 감정이 소유욕이나 정복욕이 아니고 사랑임이 확실해 지면서 거꾸로 게임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더 알고 싶다는 무한한 호기심과 기대하는데로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그와 다를 때의 배신감. 생각하면 두근거리고 함께하면 마냥 행복하고. 그것의 존재로 인해 하루하루가 의미를 가지는 대상. 사랑이 아니면 달리 무어라 할까.
처음에 반했던 이유가 미움의 이유가 된다. 게임이 주는 즐거움은 게임을 싫어하게 된 첫번째 이유가 되었고, 게임이 가진 새로운 표현양식으로서의 가능성도 싫어진 된 두번째 이유가 되었다. 오랜 시간 게임이 나중에 이룩 할 지도 모르는 어떤 상이나,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외곡된 모습을 사랑했다. 화가 잭슨 폴락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의 연인의 사랑처럼. 내가 참을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지만 저작도구가 발전하면 개인이 자신이 생각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올지 누가 알까. 아직은 아무런 의미도 담지 못하지만 영화가 표현기법을 차곡차곡 쌓아가서 예술의 자리를 획득했듯 게임(또는 게임의 자식벌 되는 무언가)이 표현양식으로서의 자리를 획득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TV에 맞게 생활패턴을 바꾸면서 TV에 적응 한 것 처럼 게임도 파괴적이지 않은 삶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 수 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루어질까? 노력으로 그 날이 오는 것을 앞당길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안 게임(또는 그 다음세대의 무언가)에 메세지를 담아볼 수 있을까? 그 날은 나 살아있는 동안 오지 않을 텐데. 오로지 나의 자식세대를 위해서 수도승 처럼 내 생을 바쳐야 하는가. 사년을 고민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자식이 아니라 연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게임을 포기했다.
두번째 사랑(사람에 대해서는 첫사랑)은 첫사랑인 게임과의 결별이 불러온 파장에 휘말려 어처구니 없게 행방이 묘연해져 버렸다. 기회가 있을 때는 내게 여유가 없었고, 게임 문제가 정리되서 여유가 생겼을 때 기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첫 사랑과 두번째 사랑은 거의 동시에 끝났다. 게임에게 그러했듯이 두번째 상대에게도 어떤 상을 부과하고 열렬하게 상을 찬양했다는 사실을 깨닳았기에 더욱 힘들었다. 애정 표현방식은 대상이 사람이거나 사물이거나 관계없이 동일한지도 모른다. 게임을 대하는 자세로 나는 사람을 대하고 이웃을 대하고 가족을 대하고 또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이년을 사랑할 기력 없이,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패배감에 절어서 지냈다.
이제 다시 사랑한다. 컴퓨터공학을 사랑하고 또 사람을 사랑하고 나의 삶과 친구들과 시와 소설과 철학과 포크송과 발라드와 프로그레시브락과 예수님을 사랑한다.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대에게 다가가는데 두려워 하지 않고, 기대와 다른 모습을 발견해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사랑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반. 설례임이 반. 두렵지만, 조심해서 나아가는 수 밖에 없겠지. 우선 나에게 어떤 상을 강요하지 않는데서 출발하는 수 밖에 없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4번출구 아래 오락실 노래방에서 생각했다.
Posted by 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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