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답

백만년만에 포스팅이 또 맥락없는 진지한 글이다.
"오래된 일본어포스팅"과 "블로그 닫는글"을 닫는글 쯤 된다.

나를 입다물게 만든 많은 질문들을 풀지는 못했지만,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질문을 품고도 괴로워하지 않을만큼은 자랐다.
딱 한가지 질문에 대해서만 답을 적어두고자 한다.

Q : 게임을 긍정할 수 있는가?
A : 아니.

이제 게임제작이라는 꿈에서는 눈길을 거둔다.
같은 꿈을 꾸었던 피앙와 정군에게 미안하구나.
죽는날 까지 게임에 대해 방관자로 남겠다.

더 이상 어제에 발목 잡히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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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어핀드 2007/08/10 13:34 # M/D Reply Permalink

    으물? ;ㅁ;

  2. 飛烏 2007/08/10 15:16 # M/D Reply Permalink

    완전히 떠나는구나 ;ㅇ;

  3. Rica 2007/08/10 17:08 # M/D Reply Permalink

    흑 흑 흑

  4. erniea 2007/08/10 23:12 # M/D Reply Permalink

    아. 아쉽다. 하지만 나도 요즘 조금 회의적.

  5. 양치 2007/08/11 00:11 # M/D Reply Permalink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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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진짜 못되 쳐먹은 놈이다.
받은게 얼만데 받은적이 없어서 배풀지 못하겠다고!
즐겁게 살지 못하겠다고!
감사하지 못하겠다고!

대화명 족발당과 십자가에 걸고.
찌질하게 살지 말자.

믿고 꿈꾸고 사랑하고 부지런하고
배고프고 겸손하고 솔직하자.

2.
5월가기 전에 홈페이지 리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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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치 2007/04/24 00:29 # M/D Reply Permalink

    족발당이 무슨 뜻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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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音

知音. 삶 속에서 때가 끼어 잘 보이지 않게된 나의 진실된 일면을 그에게 비추어 다시 찾을 수 있는 친구. 지난 몇년간 주변의 다른 이들처럼 다양한 친구의 복을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불평했지만, 이제는 知音이라 부를 수 있는 친구를 다만 몇명이라도 허락해 주심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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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랑이 주제다. 내가 처음 열렬하게 사랑했던 대상은 게임이다.  일본 소년 스포츠만화의 주인공이 자신의 종목을 사랑하는 것 처럼. 아주 단순하고 열정적으로 게임을 사랑했다. 게임 플레이를 즐기기도 했고 종이위에 연필로 만들고 싶은 게임의 기획을 끄적거릴 때는 참을 수없이 행복했다. 중학교 도덕시험시간에는 떠오른 아이디어를 시험지 위에 열심히 적었는데 시험지를 거둬가는 바람에 원칙주의자인 선생님을 찾아가 담판(?)을 지은 적도 있다.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정제하다가 언젠가 인맥이 넓어져 내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를 만났을 때 인디밴드가 힘들게 한곡씩 레코딩하여 앨범을 내듯이 배고프더라도 완성도있는 게임을 만들 꿈을 꿨다. Quest팀이 나의 우상이요, 미야모토 시게루와 시드마이어는 나의 신이었다.

아주 최근 까지도 게임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한 때의 비전정도로 여겼다. 이성을 사랑하면서 상대를 향한 나의 감정이 게임에 대해 품었던 마음과 비슷하여 당황한 적이 있다. 탐구해야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정복할 대상, 피상적인 객체로 사람을 생각하는 내가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성에 대한 감정이 소유욕이나 정복욕이 아니고 사랑임이 확실해 지면서 거꾸로 게임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더 알고 싶다는 무한한 호기심과 기대하는데로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그와 다를 때의 배신감. 생각하면 두근거리고 함께하면 마냥 행복하고. 그것의 존재로 인해 하루하루가 의미를 가지는 대상. 사랑이 아니면 달리 무어라 할까.

처음에 반했던 이유가 미움의 이유가 된다. 게임이 주는 즐거움은 게임을 싫어하게 된 첫번째 이유가 되었고, 게임이 가진 새로운 표현양식으로서의 가능성도 싫어진 된 두번째 이유가 되었다. 오랜 시간 게임이 나중에 이룩 할 지도 모르는 어떤 상이나,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외곡된 모습을 사랑했다. 화가 잭슨 폴락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의 연인의 사랑처럼. 내가 참을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지만 저작도구가 발전하면 개인이 자신이 생각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올지 누가 알까. 아직은 아무런 의미도 담지 못하지만 영화가 표현기법을 차곡차곡 쌓아가서 예술의 자리를 획득했듯 게임(또는 게임의 자식벌 되는 무언가)이 표현양식으로서의 자리를 획득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TV에 맞게 생활패턴을 바꾸면서 TV에 적응 한 것 처럼 게임도 파괴적이지 않은 삶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 수 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루어질까? 노력으로 그 날이 오는 것을 앞당길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안 게임(또는 그 다음세대의 무언가)에 메세지를 담아볼 수 있을까? 그 날은 나 살아있는 동안 오지 않을 텐데. 오로지 나의 자식세대를 위해서 수도승 처럼 내 생을 바쳐야 하는가. 사년을 고민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자식이 아니라 연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게임을 포기했다.

두번째 사랑(사람에 대해서는 첫사랑)은 첫사랑인 게임과의 결별이 불러온 파장에 휘말려 어처구니 없게 행방이 묘연해져 버렸다. 기회가 있을 때는 내게 여유가 없었고, 게임 문제가 정리되서 여유가 생겼을 때 기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첫 사랑과 두번째 사랑은 거의 동시에 끝났다. 게임에게 그러했듯이 두번째 상대에게도 어떤 상을 부과하고 열렬하게 상을 찬양했다는 사실을 깨닳았기에 더욱 힘들었다. 애정 표현방식은 대상이 사람이거나 사물이거나 관계없이 동일한지도 모른다. 게임을 대하는 자세로 나는 사람을 대하고 이웃을 대하고 가족을 대하고 또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이년을 사랑할 기력 없이,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패배감에 절어서 지냈다.

이제 다시 사랑한다. 컴퓨터공학을 사랑하고 또 사람을 사랑하고 나의 삶과 친구들과 시와 소설과 철학과 포크송과 발라드와 프로그레시브락과 예수님을 사랑한다.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대에게 다가가는데 두려워 하지 않고, 기대와 다른 모습을 발견해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사랑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반. 설례임이 반. 두렵지만, 조심해서 나아가는 수 밖에 없겠지. 우선 나에게 어떤 상을 강요하지 않는데서 출발하는 수 밖에 없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4번출구 아래 오락실 노래방에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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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치 2007/02/06 00:05 # M/D Reply Permalink

    사랑할게 무엇이든 있다는건 역시 좋은거지?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머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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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바가 많다.

예삼이 Said

""문제가 있는건, 무언가 하기때문이다." 라고 말하더라"

느낀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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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must have

2007년의 must have
개깡, 유머 그리고 좋은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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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rniea 2007/01/20 13:39 # M/D Reply Permalink

    must have 말빨

    1. 발당 2007/01/22 23:47 # M/D Permalink

      이미 상당하지 않나, 제군?

  2. Lockid 2007/01/20 17:07 # M/D Reply Permalink

    Must have
    김민호 이병님같은 좋은 선임 ㅋ

    1. 발당 2007/01/22 23:48 # M/D Permalink

      김민호 이병님처럼 청림이를 떨게 만드는 휼륭한 친구 : )

  3. WinNie 2007/01/22 01:27 # M/D Reply Permalink

    Must have S라인 [...]
    Must have 병특 [...]

    1. 발당 2007/01/22 23:49 # M/D Permalink

      후자는 그렇다 치고....
      전자는... 어미벌도 S라인을 얻을 수 있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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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of 2006

  • 자히르와 아코모다도르, 표지 -- 오, 자히르 , 파울로 코엘료

  • *이탈리아의 자동차는 길을 가다가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눌 것만 같다. --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 *남아서 미래를 위해 씨앗을 지키는 사람도 필요하다 -- 부분과 전체, 하이젠베르크

  • *시적인 묘사는 무능한 문객의 도피처 -- 생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 *왜 사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 생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 소유양식과 존재양식 --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 rosebud(두번째 부인이 떠난뒤) -- 시민케인, 오손 웰슨

  • *한서를 공부하다 희노애락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구절을 만났다. 평생의 기치로 삼을 만 하다고 여겼다. -- 백옹자전, 후쿠자와 유키치

  • *창의성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서 나온다. -- 열정을 경영하라, 진대제

  • 점쟁이가 되려 하지 말아라 -- 알고리즘 수업중, 박근수

  • 업보 -- snucse, 허승

  • 있잖아 나나, 완벽한 사랑 만을 사랑이라고 하는, 그런 서글픈 어른은 되지 말아줘. -- 나나, 야자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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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도 노트북이 고장났다. 학기중에 사운드카드가 고장나고 CD드라이브가 망가지더니 이제는 파워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방학중에는 컴퓨터를 쓸 일이 많이 없기 때문에 수리하는 대신 개강직전에 데스크탑을 새로 사기로 했다. 쓰지도 않는 노트북이 자리를 차지하게 할 수 없으니 상자에 넣어서 장롱 한켠에 치워두었다. 돌이켜보면 최근 5년 사이에 그 노트북만큼 내 삶과 밀접했던 녀석도 없었다. 그 전에도 집에는 언제나 공용 컴퓨터가 있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항상 내 차지이기는 했지만, "내 컴퓨터" 와 "내가 주로 쓰는 컴퓨터" 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대학교 1학년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자유와 난생 처음으로 생긴 내 컴퓨터(게다가 들고 다닐 수 까지 있지)는 내 라이프스타일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았다. 너무 많이 변해서 단순비교가 불가능하지만(고등학생과 대학생이라는 신분의 변화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비교해보면 노트북이 없었던 시절만 못한 것 같다. 컴퓨터에 얾매이게 되었다고 해야하나? 모든 생활이 컴퓨터에 의존한다. 공부도 취미도 휴식도 사람과의 사귐도 컴퓨터를 통한다. 덕분에 존재하지 않았던 컴퓨터공학도 최원태가 빠른 속도로 자라났지만, 인간 최원태는 어리석어 진 것 같다.

이제서야 시작한 고민은 아니다. 2학년 초부터 이어져오는 고민이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 않은" 컴퓨터공학자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릴 수 없었다. 공부를 그만둘 수 는 없고, 대안을 찾을 수 는 없으니까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제 살을 깎아먺으며 버텨왔다.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나마 컴퓨터에 얽매이지 않는 컴퓨터공학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종이와 펜, 그리고 머리속에 들어있는 가상의 컴퓨터를 가지고 프로그래밍 하고 작업한다. 많은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대신 많은 생각을 하고, 최후의 순간에 느리게 프로그래밍한다. D.Knuth의 수기에 나온 표현대로 "돌에 새기듯이 코딩한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 그는 프로그래머라기 보다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수학자 처럼 보일 수 도 있다. 컴퓨터 앞에는 꼭 필요한 순간에만 앉으며 평상시에는 "컴퓨터를 이용할 필요가 없는 작업"을 가능하면 컴퓨터 없이 수행한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한자리에서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만큼 경험의 폭이 재한되기 때문이며, 경험은 장기적으로 그의 사고의 폭을 더욱 넓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이 움직이는 속도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보다 빠른 것을 믿는다. 집중해서 사고하고는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한다.  그는 컴퓨터를 다루는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컴퓨터로부터도 자유롭다.

컴퓨터를 자유롭게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컴퓨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싶다. 2007년은 그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한해로 만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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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워니 2007/01/07 22:21 # M/D Reply Permalink

    눈이 좋아지겠군! (이게 아닌가? -_-a)

    1. 발당 2007/01/09 10:14 # M/D Permalink

      컴퓨터 안하면 눈이 일시적으로 좋아지기는 하는데, 다시 시작하면 원래보다 더 안좋아진다는거 ㅠㅠ.

  2. stania 2007/01/08 09:32 # M/D Reply Permalink

    옳은 말씀이십니다.

  3. D.L 2007/01/08 10:35 # M/D Reply Permalink

    공감 100%.
    그런 의미에서 우리 irc 홀릭들은..... OTL

  4. 슈레인 2007/01/08 10:43 # M/D Reply Permalink

    맞긴 한데 말이지.... 그게 쉽냐!!

    1. 발당 2007/01/09 10:15 # M/D Permalink

      본인은 컴퓨터가 고장나서, 고치지만 않으면 쉽소. ㄲㄲ

  5. 유키 2007/01/08 12:30 # M/D Reply Permalink

    나는 자유보다 구속이 좋아
    컴퓨터여 나를 붙잡아주오 ㅁ너ㅏㅣㅇ

    1. 오천원 2007/01/13 13:24 # M/D Permalink

      유키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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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고 심호흡 한번.


과제핑계를 대면서 얼마나 많은 감정과 인상과 순간을 허공중으로 날려버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억력도 좋지 않은데. 학기가 끝나고 오롯이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때 지난 석달을 돌이킬 수 있을까. 돌이키다가, 기한이 지난 티켓을 뒤늦게 지갑에서 발견하듯 후회하는 일은 없을까. 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어찌할바 모르며 새로운 챗바퀴에 들어가 달리는 과오를 반복하지나 않을까. 그래. 습관이란게 참 무섭다. 사실 그렇게 바쁘지도 않은데. 그저 균형잡기가 힘들 뿐인데. 새로운 지점을 향해 달리기 보다는 선별해서 품고 소중하게 잘 지키면서 나아가는 삶이 풍족한 삶의 방식일텐데. 이러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오늘 그리고 또 다른 오늘을 어제 그랬던 것처럼 살아넘기고만다.  눈앞의 편의를 위해서 나는 나한테 죄를 짖고 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Chocolateless. 정죄하지는 않으련다.. 오늘이 어제 같아서는 안되지만. 오늘이 완벽할 수 도 없는거지.

하늘보고 심호흡 한번. 이제 다시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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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치 2006/12/03 01:23 # M/D Reply Permalink

    챗바퀴(X) -> 쳇바퀴(O)
    짖고(X) -> 짓고(O)

    그래도 난 이번 학기에 원태랑 이야기 많이해서 즐거웠어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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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초컬릿 거절

하루 한끼 먹기도 힘든 가난한 나라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크게 출세한 가수가 있었다. 선물로 줄 초컬릿을 한아름 사들고 고향 아이들을 방문하려는데 메니저가 말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초컬릿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 아이들은 초컬릿을 먹지 못하게 가난하다는 표현을 몰라. 네가 초컬릿을 가져가면 먹는 순간은 달콤하고 행복하겠지만 앞으로 초컷릿을 생각할 때 마다 가난을 느끼게 될거야.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자. 다른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거야."

오래전 일이라 누구에게 들었는지 또 어떤 맥락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내가 가난한 마을 아이이면서 메니저라는 생각이 든다. Cyworld에 반가운 방명록 새 글이 올라오거나 연락이 끊겼던 친구와 갑자기 연결되도 깊은 관심을 두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면 내가 가지기 못했고 앞으로도 학업에 치이느라 당분간은 없이 지내야 하는, 보통은 당연히 지니고 있을 무언가를 떠올릴 테다. 그러면 나는 초컬릿을 먹은 후의 아이처럼 나의 빈곤함에 괴로워 하겠지. 혹시나 견디지 못해 무너지면 지금까지 끌고온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매니저인 나는 아이인 내가 현실을 보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차단중이다. 요즘의 내게서 명랑함이 보인다면 가난해도 가난한 줄 모르는 아이의 처절한 명랑함일 것이고 어두움이 보인다면 매니저의 고뇌일 것이다.

혹시라도 연락이 되지 않아서 걱정하거나, 삐진 사람이 있을까봐 적어둔다.

"당신이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당신을 가까이 하면 내가 아파서 당분간 피해있습니다"

아이가 계속해서 돈있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초컬릿을 구걸하면 원할 때 초컬릿을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조있는 아이에게 구걸은 먹지 못하는 것 보다 더욱 괴롭다. 시간이 지나 아이의 경제형편이 좋아지면 제일 먼저 나에게 초컬릿을 주려 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리라. 내가 초컬릿을 가지고 찾아가리라. 그리고 다시는 가난해지지지 않으리 : 시간과 여유에 빈곤한 거지가 되지 않으리라.

p.s 블로그에 오는 사람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우리 조금만 견디고, 다시는 주는 초컬릿도 마다해야 할 만큼 가난해지지 말자.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자가 그 맛을 안다고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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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飛烏 2006/11/16 23:26 # M/D Reply Permalink

    사람도 학업도 둘 다 놓치긴 싫은데..
    어느 하나도 못잡는 거 같아서 안타깝다.

  2. evertaiji 2006/11/18 21:50 # M/D Reply Permalink

    캬.멋져 아주그냥ㅋ

  3. 발당 2006/12/12 13:57 # M/D Reply Permalink

    이 글을 쓴지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누가 시간좀 붙들어매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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